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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봉사와 선행 이야기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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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9 00:00:00

아름다운 봉사와 선행 이야기 최우수상 

 디자인대학 1학년 조예은…새롭게 그려나가다, 벽화가 만든 희망

 


 

칙칙한 모교 고등학교 미술실 벽화로 산뜻하게 단장

 책 위에 앉아 웃고 있는, 교복 입은 여학생 통해 희망 메시지 전달

 어렸을 적부터 해온 남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나만의 재능 확인

 후배들의 미술에 대한 인식 바꿀 수 있어서 뿌듯함 느껴

 앞으로 희망을 주는 그림 그릴 수 있는 사람 되고 싶어

어렸을 적부터 그림이라고 하면 내 짧은 인생의 동반자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것이었다.

 

말을 배우기 전부터 엄마가 사준 커다란 도화지에 올라가 구석구석 낙서를 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 중 하나였고, 유치원을 다닐 나이가 돼서는 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주는 것이 행복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방학 숙제와 기념일에도 아이들 캐릭터를 그려 선물해 주는 등 그림으로 남에게 베푸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자랐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남에게 행복을 주고 그로인해 나도 그림 그리는 행위로 행복을 더 받았다.

 

유치원·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몇 반에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통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선생님들도 나를 그렇게 부르며 내 도움을 많이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림과 포토숍 디자인을 독학으로 공부해 학교 축제 포스터와 리플렛, 졸업앨범 디자인과 CD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 도움을 주었다. 그 때는 아무런 보상 없이 그저 주변사람들이 고마워해주는 것이 좋아서 그런 부탁은 내가 당연히 맡는 일이었다.

 

이렇게 그림으로 도움을 많이 줬지만 ‘봉사’라고 한다면 항상 전시회 꾸미기 등 딱히 봉사라고 할 수 없는 일들 뿐 이었는데, 지난해 초 내가 졸업한 김해가야고등학교에서 친한 미술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벽화봉사를 하러가게 되었다.

 

모교 고등학교의 미술실은 2층 남학생반 복도 끝에서도 안쪽, 어두침침한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학생들이 조용하게 공부하는 독서실이 있었는데, 미술실이 그곳에 있는 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선생님의 부탁은 미술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벽을 그림으로 채워 생기를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늘 종이에 그리기만 했지 벽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 뿐더러, 내 공간도 아니고 엄연히 따지면 남의 건물에 내가 함부로 손을 대었다가“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선뜻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원시원한 선생님 성격에 밀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기로 했다.

 

일단 같이 온 친구들(고등학생 당시 같은 미술 동아리)과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야 이 공간에 잘 어우러지고 또 우리가 힘들지 않게 벽화작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하나 둘 의견이 나왔다. 학생·꿈·책·공부·희망 등등…. 내린 결론은 졸업한 모교에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푸른 초원 위 쌓여있는 커다란 책 위에 앉아 웃고 있고, 뒤에는 높은 나무와 파란 하늘을 그려 넣기로 했다.

 

이곳저곳 널려 있는 책들에 하나씩 책이름을 붙여 넣었다.벽화를 그리기 시작하자 미술실이 구석에 있는데도 후배들이 지나다니면서 웅성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다니던 고교 시절에도 미술 같은 예체능 계열은 나처럼 흥미를 느끼는 학생들이 아니면 시간 때우는, 아니면 점수를 거저먹기 위한 수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인식을 바꿔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해보는 벽화 붓질도 힘차게 뻗어 나갔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학교는 전체적으로 조용한 편이었다. 독서실에는 그래도 후배들이 많아 나와 공부하면서 기웃거리며 유심히 지켜보았다.


입시 준비를 하는 후배들에게 피해가 안가도록 최대한 조용히 작업을 진행했다.

친구들과 나는 그림을 그리며 고작 1년 전 이야기이지만, 학창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나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그렸다. 학창시절에는 교복을 입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많이 가졌지만 “지금은 교복을 입고 싶다”며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그려나갔다.

 

벽화작업이 계속 이어지자 벽화라는 게 어떻게 보면 단순작업이고 아주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는 꼴이 되어 버려서 팔에 무리도 가고 아크릴 물감 냄새가 심해 머리도 띵할 정도였다. 그 때 알던 지내던 후배가 지나가다 들러서 우리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언니!! 이거 정말 언니가 한 거예요? 진짜 예쁘다. 어서 완성해줘요!”

 

“그렇게 칙칙했는데 벌써 분위기가 달라요.”

 

누군가의 칭찬이 그렇게 힘이 되는 것인 줄 그 때 깨달았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참에 그런 소리를 들으니 쉬지 않고 그릴 수 있었다.

 

일요일날 전날 하다 남은 색칠과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흰 배경에 스케치만 하고 바라볼 때는 도대체 언제 끝날까 생각했던 것이 벌써 끝을 보이고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전날보다는 확연히 적지만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오는 동생들이 제법 있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후배들은 처음에는 우리가 그림 그린다고 공부에 방해(?)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는데, 그림이 진행 될수록 옆에서 지켜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저녁 즈음에는 그림에 대해서 물어보고 지켜보다니 뿌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각자 맡은 벽화 파트 옆에 본인의 이름을 작게 적어 넣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널브러져 있던 물감과 재료들을 모두 정리한 뒤 우리가 완성한 벽화를 보았다. 다들 처음에는 “와” 하며 탄성을 지르다가 잠시 지나니 아무 말 없이 그림을 지켜봤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시작하기 전에 찍어둔 사진과 나란히 두고 비교해봤다.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벽화가 완성되고 나니 후배들이 감동을 받은 것인지, 이곳저곳 다시 사진을 찍는 등 신이 나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우리에게 벽화를 부탁한 미술 선생님도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벽화를 완성한 날이 일요일이어서 후배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후배들의 반응을 충분히 살펴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당초 세운 목표를 달성해서 그런지 날씨는 쌀쌀했지만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며칠이 지나 학교 후배에게 연락이 와서 학생들의 반응을 듣게 되었다. 미술에 관심이 없던 후배들도 미술실을 오가면서 그림 구경을 하고, 신기해하더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으로 그려둔 여학생도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후배들이 더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벽화그리기 이전에 했던 그림선물과 디자인은 각자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라서 관심과 만족을 얻기가 비교적 쉬웠다. 이번 벽화는 특별히 학생들의 부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처음 해보는 분야여서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컸었다.


평소에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이나 재능에 대해서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눈에 띄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출한 것이 아니어서 항상 나는 '어중간한, 그저 그런' 정도로 생각 해왔다. 그랬는데 벽화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해온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나만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봉사' 라는 것이 누굴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않더라도 이렇게 간접적으로 기쁜 마음을 주는 것도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며칠 동안 그렸으니 몸은 너무 피곤했지만 그 힘듦을 잊게 만드는 성취감과 행복감을 얻게 되었다. 이번에 처음 해봤지만 앞으로는 더 넓고 큰 곳에 전문적으로 벽화를 완성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의 미술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어서 좋았고 앞으로 희망을 주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